야설: 회상_하_풋내기들 - 중편 | 야설공작소

회상_하_풋내기들 - 중편
최고관리자 0 19,406 2022.11.21 00:47
“누나 나 좋아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입 밖으로 이 말이 나왔다. 나도 누나도 순간 당황해서 말이 없었다. “농담이야~ 왜 이렇게 정색을…” 무안했던 내가 먼저 농으로 무마를 해보려고 했지만 누나는 아직 그럴 기분이 아닌지 그저 맥주만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미안해~ 뭘 또 그렇게 예민하게~” “네가 나 좋아하는 것 아니었어?” 하고 되묻는다. 당황스럽다. “뭐?... 그냥 뭐…” 긍정도 부정도 할 수가 없다. “내가 뭐 하자고 하면 다 해주고~ 매일 붙어 다니고~ 너 나 좋아하는 거 아니야? 애들도 니가 나 좋아한다고 그러던데…” “누가?” “아니… 애들이…” 티가 났겠지… 그래 그랬을 거다. 맘에 들지 않는 이놈의 대학도 처음에 누나가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던가? “…” 대답을 하지 못하고 나도 그냥 앉아만 있었다. “찬이는 니 친구고~ 찬이랑 나랑 만나도 넌 괜찮아? 좋아하는거 아니야?” 한참을 망설이다가 다시 물어오는 누나에게 나도 모르게 성질을 냈다. “알면서 뭘 물어봐~” 한번도 화를 낸 적이 없던 내가 그래서일까? 누나의 큰 눈이 더 커진다. “그럼 만나지 말아야겠다” “…” 우리는 그렇게 어색하게 한참이나 그 곳에서 앉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누나는 언제나 나보다는 용기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났는지 누나는 다시 내게 물어왔다. “근데 왜 다른 여자들 만나고 나한테는 관심 없는 척 하는 건데?” 그러게… 그건 나도 모르겠다. 왠지 누나랑은 그러면 안될 것 같다고 해야 하나? “…” 누나는 답답했는지 자꾸만 같은 질문을 했다. “아~ 안 만나면 되잖아~” 버럭 성질을 내는 나를 누나는 말없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에이~ 나 갈래~” 하고는 박차고 나와서 차를 몰고 그냥 집으로 와 버렸다. 다음날 나는 학교근처 만화가게에서 하루 종일 만화를 보았다. 왠지 학교에 가기가 좀 그랬다. 누나랑 마주치기도 싫지만 보고 싶기도 했다. 온종일 만화가게에서 살다가 나오니 벌써 저녁이다. 다시 집으로 가려고 주차장으로 걸어가는데 누가 뒤에서 탁하고 친다. 수연이다. “오빠~ 찬이 오빠는?” 찬이 여자친구다. “어? 나 오늘 찬이 못봤는데?” “아~ 그래?” 하더니 곧 얼굴이 어두워진다. “왜? 무슨 일 있니?” “아니~ 요사이 몇 일 동안 찬이오빠가 내 삐삐 씹어서~ 그냥 학교에 오면 찾을 수 있을까 하고 왔는데 없길래~” “그래? 사실 나도 오늘 학교 땡땡이 쳐서 모르겠는데~” “그럼 오빠 내 부탁 하나 들어줘~” “응? 뭐?” “나 술 한잔 사줘~ 그리고 찬이 오빠한테 삐삐쳐서 좀 불러내주면 안될까?” 초롱초롱한 눈으로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양 나를 보고 있는 그 애의 부탁을 차마 거절하기는 힘들다. “그래~”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거니와 지영 누나에게 껄떡대는 찬이 놈에게도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더 확실하게 해두고 싶다. 그래서 우리는 학교 근처 호프집으로 가서 맥주랑 안주를 시켜놓고는 삐삐를 쳤다. 기다리는 동안 수연이는 재잘재잘 잘도 떠든다.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부터 묻지도 않은 이야기까지 입이 아플 정도로 수다를 떠는 것을 들어주고 있었다. 왠지 그 애가 귀여웠다. 무릎이 조금 덮이는 회색 플레어 스커트에 흰색 티셔츠를 입은 수연이는 조그마한 작은 체형의 아이여서 그랬는지 옷도 그 애도 귀엽게만 느껴졌다. 한참을 기다리는데도 삐삐의 회신은 오지 않았다. 그런대도 수연이는 조잘조잘 대면서 맥주를 꾀나 먹고 있었다. “야~ 쪼끄만게 맥주를 왜 이렇게 잘마셔?” “아~ 뭐야~ 노인네처럼~” 하고 핀잔을 주더니 맥주를 추가한다. 벌써 3잔이나 비웠다. 1500cc나 비웠는데도 멀쩡하다. 꾀나 술을 마시고 다닌 모양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찰랑 소리가 나면서 입구에서 손님이 들어온다. 찬이와 지영 누나다. 순간 내가 멈칫했고 그 다음 먼저 들어오던 찬이가 날 보았고 뒤 따르던 지영 누나가 날 보고 놀랐다. 뒤이어 문을 등지고 앉아있던 수연이가 고개를 돌려 모두가 황당해했다. 이렇게 우리는 어색한 4명이 그날 술자리를 하게 되었다. 지금도 가끔은 그날이 생각난다. 그날 우리가 우연히 이렇게 마주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어색함을 깨기 위해서 먼저 찬이 놈을 타박했다. “야 넌 삐삐치면 전화 좀 해라~ 내가 수연이랑 여기서 40분도 넘게 기다렸는데… 수연이가 너 좀 찾으러 여기까지 왔잖아~ 왜 이렇게 연락이 안되냐?” “아~ 그래?” 하면서 찬이 녀석이 어색해했다. 지영이 누나는 계속해서 내 눈치를 살피고 있다. 찬이가 안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수연이를 불러 잠시 이야기 좀 하고 오겠다고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쟤가 찬이 여자친구야?” “응~ 그거 봐~ 괜히 누나만 고민했지? 아 저 새끼 어린애 상처 주면서 누나가 뭐가 좋다구~” “어머~ 어머~” “찬이 여자친구 예쁘지 않아? 난 이해가 안가~ 왜 저렇게 예쁘고 귀여운 애를 두고~ 참~” “나처럼 노인네를 좋아하냐고?” “아니 꼭 그런 말은 아니고~ 근데 누나는 이 시간에 찬이랑 여기 단둘이 왜 온건데?” “야~ 어제 너랑 한 이야기 하러 왔다” “아직 얘기 안 했어?” “좀 전에 만났어~ 나 오늘 일이 있어서 어디 좀 갔다가 과 사무실에 책 가지러 왔더니 거기서 나 기다리고 있더라고~” “뭐라고 하게?” “응? … 그게… 여기서 너랑 쟤랑 마주쳤는데 뭐~ 잘 됐지~ 여자친구한테나 잘 하라고 해야지 뭐” “응~” 이때까지만 해도 해프닝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누나와 나는 맥주를 마시면서 수다를 떨고 있는데 찬이가 혼자서 들어왔다. “야 왜 혼자와?” “민기야 미안한데 나 지영 누나랑 잠시 이야기 좀 하고 올께” 하더니 누나 팔을 잡아 끄는 것을 내가 다시 찬이 놈 팔을 잡고 “수연이는~ 갔냐?” “응 갔어~” “야 여기 가방 있는데 왜 그냥 보냈어~ 그냥 둘이 여기서 얘기해라 내가 가방 갔다 주고 올께” 하고 가방을 들고 나오니 수연이는 보이지 않는다.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가니 그 곳에도 없다. 왠지 찬이 놈이 상처 주는 이야기를 한 것 같아 걱정이 된다. 다시 호프집을 지나 지하철 방향으로 숨이 차도록 뛰어갔다. 여기에도 없는 것 같다. 터덜터덜 숨을 고르면서 다시 그 호프집으로 돌아오는데 길 안쪽에 있는 놀이터 그네에 뭔가 흔들흔들… 혹시 몰라서 가보니 역시 수연이다. “한참 찾았네~ 가방 가져가야지~” “…” 뒤쪽에서 다가가 그네에 앉도록 수연이는 아무 말이 없다. 가방을 건네며 보니 수연이가 말 없이 울고 있었다. “찬이가 그만 만나자고 하니?” “…” “잠시… 그런걸꺼야~” “오빠~ 지영 언니가 아까 그 언니죠?” “응” “그 언니 좋아한데요~ 흑흑” “…” “저 어떻게 해요~ 흑흑” “에이 참 그놈… 야~ 야~ 잊어버려 찬이 같은 바람둥이~” “우아앙~~” 소리 내서 크게 운다. 많이 좋아한 모양이다. 어쩌면 찬이도 누나에게 지금 이런 꼴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네 옆에서 가방을 들고 그렇게 한참이나 서 있었다. 조금 울음을 그치더니 벌떡 일어나 눈물을 훔치고는 “오빠 나 술 한잔 사줘요~” “야 너 아까도 많이 먹던데~” “에이~ 맥준데요~ 저 소주 한잔 사주세요” “야 무슨 술이냐~ 그리고 나 다시 돌아간다고 말하고 나왔어” “그럼 다녀오세요~” “응?” “여기서 기다릴 테니 다녀오세요~” 난감하다. 막무가내인 수연이를 말릴 수는 없을 것 같다. 다시 돌아가서 찬이 놈을 보내야겠다. “그럴래? 그럼 조금 기다려~” 하고는 다시 호프집으로 걸었다. 찬이 놈이 지영 누나에게 차인다면 수연이에게 돌아갈 것 같다. 녀석은 외로움을 많이 타는 놈이니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호프집에 들어서는데 지영 누나와 찬이가 키스를 하고 있다. 급히 다시 나와버렸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냥 다시 나와서는 수연이에게 다시 돌아갔다. 뭘까? 지영 누나는 분명 나에게 안 된다고 한다고 했다. 불쾌하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처참하다. 비참하다. “오빠~” 수연이가 부르는걸 듣고서야 주위를 둘러 보았다. 지하철 역이다. “무슨 생각해요~ 그냥 갈려고 했죠? 오빠 바쁘면 그냥 가요~” 하면서 한발 물러서는 수연이에게 나는 “그냥 무슨 생각 좀 하느라고… 가자!” 난 수연이와 자하철역 근처에 있는 소주방으로 갔다. 대충 안주를 시키고 소주가 오자마자 연거푸 들이켰다. 눈에서 불이 난다. 수연이는 그런 내가 불편했는지 눈치를 보고 있다. 미안하다. 지금 제 속도 속이 아닐텐데… “너도 한잔 할래?” “네?” “자~ 한잔해~” “넌 찬이 어디가 좋니?” “그냥~ 몰라요” 다시 말 없이 우리는 소주를 먹었다. 술이 들어가니 속도 눈도 조금씩 풀어진다. 그래 사귄 것도 아니고, 내가 뭐라고 그들을 욕하겠는가? 아니라고 했지만 내심 좋아라 했던 지영 누나의 표정도 이제야 알 것 같기도 하다. 어제는 그냥 찔러 보았겠지… 학교에서는 누구나 알고 있는 난봉꾼인 내게 누나가 맘을 줄리 없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수연이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연거푸 술을 들이키면서 생각에 잠겨있다. 그러다가 얼굴을 떨구고는 훌쩍거린다. 같은 꼴이 아닌가? 내심 나를 보는 것 같아 안쓰럽다. “수연아… 잊자… 오늘은 실컷 울고 내일부터는 잊어버려~” 위로 따위를 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되도 않는 위로를 하고 있는 내가 우습다. “흣” 코웃음이 들렸을까? 수연이가 울다 말고 고개를 든다. “왜요?” 제 꼴에 웃는 것으로 오해라도 한 것처럼 묻는다. “아니~ 너랑 나랑 웃긴다… 궁상 떨지 말고 놀러 가자” 이러고 있는 내 꼴이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짜고짜 수연이를 끌고 나와 락까페를 갔다. 큰 음악소리와 함께 있고 싶었다. 실컷 땀을 빼고 수연이를 혼자 두고 잠시 나와서 담배를 피우는데 수연이가 따라 나온다. “오빠 나 혼자 두고 여기서 뭐해?” “응? 그냥 더워서~” “그럼 우리 노래방 갈까?” 노래방? 그래 가서 큰 소리로 노래라도 부른다면 좀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것이 실수였다. 처음에는 빠른 템포의 노래를 부르면서 우리는 즐거워했었다. 그런데 술에 취해서 일까? 수연이가 ‘사랑은 유리 같은 것’이라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도 조용히 노래를 아니 노래방 TV에 적혀있는 가사를 보고 있었다. ‘정말~ 몰랐어요~ 사랑이란 유리 같은 것~’ 노래가 끝날 때 즈음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이것만은 기억해 줘요~’ 수연이도 노래를 부르다 말고 울면서 나를 바라 보았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수연이가 마이크를 내려 놓고 나에게 다가와 두 손으로 내 눈물을 닦아 주었다. “왜 울어 오빠~ 흑흑” “…” 내 얼굴을 빤히 보던 수연이가 내 입술을 만진다. 곧 수연이 입술이 닿았다. 짭조름한 눈물이 범벅이 되어 입술로 스며드는 줄도 모르고 우리는 키스를 했다. 이미 예약을 해 놓은 노래들이 한참이나 흐르도록 우리는 길게 키스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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