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 프랑스 월드컵의 추억 - 단편6장 | 야설공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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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월드컵의 추억 - 단편6장
최고관리자 0 13,353 2022.11.04 05:03
프랑스 월드컵의 추억다음날, 은정이가 학원으로 다시 복귀(?)를 하는 날이였다. 오후쯤에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녀는, 친구 아버지 차를 얻어타고 학원으로 가는 길에 잠시 식당에 들려 점심을 먹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그녀의 목소리가 반가웠지만, 괜히 머쩍어서 그녀에게 잔소리만 늘어놓았다. -그래..조심히 들어가고..가서 공부 열심히 해- -알았어..근데..오빠 은근히 잔소리 많아..알지? -야! 다 예뻐하니깐 하는 말이야..남이면 신경도 안써..- -알았어..알았다고..- 하룻밤 정이 무섭다더니.. 정이 많이 들긴 했나 보다 싶었다. 고작 하루 본거 뿐인데, 그녀의 귀여운 투정을 듣다보니, 군대 보내는 것도 아니면서,나는 괜히 마음이 그랬다. -은정아..- -응?- -너랑 연락할려면..군대처럼 편지써야 되나?- -하하..됬거든?- -그럼..면회는 안돼?- -하하..부모님은 괜찮은데..친구는 안돼- -그래..아무튼 8월달에..서울 오게 되면 연락해- -응..알았어..오빠도 잘 지내!- 나는, 다음에 그녀를 만나게 되면, 정말 잘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잠시후, 그녀와 통화를 마친 뒤 나는 잠시 침대에 누워 지난 이틀을 돌이켜 봤다. 생각해보면 내가 은정이에게 고마워 해야 할 게 많았다. 그녀는, 내가 혜미 외에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었다. 비록 하루 동안의 짧은 만남이였지만, 나는 그녀와 같이 있는 동안 확실하게 느낀것이 있었다. 그녀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그녀로 인해 혜미 생각을 꽤 많이 떨칠 수 있었다. 내 곁에 있어야 할 사람이, 꼭 혜미일 필요는 없다는 거였다. 그랬었다. 어제 그 시간 만큼은, 내 머릿속과 마음속에 있던 사람은, 분명히 은정이였다. ***** 월드컵이 끝났다. 새벽에 친구들이랑 모여서 결승전을 봤었는데, 게임이 생각보다 너무 싱겁게 끝났다. 결국 프랑스가 우승을 했다. 한국을 비참하게 만들고, 엄청 잘 할것 같은 포스를 풍기던 네델란드는, 이번에도 예전과 비슷한 성적으로 마무리를 지은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도, 한국과 그들과의 게임은, 내가 본 월드컵 게임중 최악의 게임이였다. 아무튼, 새벽까지 깨어 있느라, 지난 몇주동안 낮시간에 유난히 피곤했던 적이 많았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또다시 4년을 기다려야 하는데, 이번에는 그 시간에 군대가 껴있어서 그런지, 엄청 길게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렇게, 월드컵이 끝나고 나서 며칠 뒤였다. 과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데, 낯설지 않은 번호로 전화가 왔다. 혜미였다. -잘 지냈어? 나 어제 왔어..- -그래..- -응..나 너 선물 사왔는데..우리 지금 볼래?- 그녀의 목소리는 무척 밝았다. 꼭 일부로 그러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순간 짜증이 났다. -오늘은 안되겠다..다음에 보자- -그래?..그럼 내일은?- -나 내일도 과외가 늦게 끝나는데..- -원래 일찍 끝나지 않았어?..그럼 몇시에 끝나는데..?- -10시 넘어..집에 오면 거의 11시야..- -알았어..그럼 그때쯤..너네 집 근처로 갈테니깐 잠시 보자- 하.. 혜미는 내 하루 스케줄을 뻔히 들여다 보고 있었다. 거짓말을 할려고 해도 쉽게 틈을 보이질 않았다. 어쩌면, 그녀는 내 목소리를 들으면서, 이미 내 상태를 눈치 챘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면 저렇게 순수히 물러날 리가 없다. 그녀라면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았다. 다음날 밤, 집 근처 커피숍에서 혜미를 만났다. 모처럼 만에 보는 그녀였다. 그래서 그런건지, 나는 조금 어색하고 그녀가 낯설기도 했다. 그냥 내 마음이 불편해서 그랬던 건지도 모르겠다. 혜미는, 음료수를 주문하고 얼마지나지 않아,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자..이거 네 선물..- 고급스런 이미지의 색깔, L 로 시작하는 브랜드 이름이 선명하게 박혀있는 네모난 모양의 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지갑이야..돈 많이 벌으라고..안에 만원 짜리 빳빳한 걸로 넣었어..- 나는 그녀의 선물 박스를 보면서, 전혀 반갑지 않았다. -나 지갑 필요 없는데..취업을 한 것도 아니고..- -알어..그냥 쇼핑하다가 눈에 띄길래 산거야..너 생각나서..- 그녀는, 오늘 작정하고 나온걸까? 상당히 나근나근 한 것 같다. 판단이 잘 서질 않았다. 말이라도 눈물나게 고마워 해야 할지, 아니면 싫다고 가지고 가라고 해야 할지.. 사실, 어제밤 나는 잠들기 전에 오늘 혜미를 만나면 어떻게 할까 고민을 했었다. 화를 낼까? 아님 섭섭하다고 대놓고 표현을 할까? 이런 저런 시뮬레이션을 머릿속으로 돌려보고 그려보고 하면서, 한참을 고민 했었다. 그러던 중, 문득 다 쓸모 없는 짓이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 따지고 보면, 나 역시도 혜미에게 공식적으로(?) 불평을 늘어놓을 만한 입장은 아니였고, 그녀 역시도, 본인이 뭔가 찜찜한게 있으니깐 나한테 전화를 시도 했고, 이렇게 만나자고까지 했던 것 같은데, 내가 굳이 거기다가 더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혜미는, 예전에 내 여자친구일때의 혜미가 아니였다. 그녀는 변했다. 이제는 나만 변하면 될 것 같았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어디까지나 그녀와 나는 '편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 나는, 어제밤 생각들을 떠올리며, 비교적 차분하게 그녀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여행은 재밌었어?- -그냥..은희 때문에 간건데 뭐..- -은희가 왜?- -몰라..사귀는 오빠랑 갑자기 여행 약속을 해서..결국 부모님한테 나를 판거지..- -오빠가 2명 있었다면서..- -응..한명은 은희가 사귀는 오빠고..다른 한명은 그 오빠 친구..- -그래..몇살들인데?..학생?- -아냐..둘다 29살 이구..졸업하고 부모님 일 도와주고 있대..한명은 유학생이구..- -그래..- 나는, 그녀의 말이 모두 사실일거라 생각했다. 그녀는 나랑 만나는 동안, 거짓말을 한적은 없었기 때문이였다. 오히려 너무 솔직한게 문제였지.. 은희라는 친구는, 혜미의 같은과 친구였다. 예전에 4-5번 같이 만나서 어울렸던 적이 있었는데, 괜찮은 외모를 가지고 있어서 성철이가 관심을 보였었다. 녀석이 한동안 궁시렁 거렸었다. 은희는 한참 성철이랑 썸(?)만 타다가 결국은 다른 남자를 만났던 것이었다. 아무튼, 결론은 은희가 나쁜 년이었다. 혜미 말을 들으보니 그렇고,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게 마음 편했다. 더 물어보는 것도 구차했다. -그래..잘 놀고 왔으면 됬지 뭐- -응..나쁘진 않았어..너는 어떻게 지냈어? 나는, 혜미에게 클럽 간 거와 은정이 만난 얘기만 빼고 대충 근황을 얘기했다. 그러고나니 솔직히 할 얘기가 많지 않았다. 한 시간 정도 커피숍에 있었을까? 시계를 보니 어느덧 12시가 가까워 지는 것 같아서, 나는 혜미에게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자고 했다. 잠시후,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혜미가 테이블 위에 있던 박스를 집어 들어 내게 건냈다. -이거 가지고 가야지- -아..맞다- 나는, 박스를 건내 받으며 그녀에게 고맙다는 의사 표시를 했다. -고마워..잘 쓸께..- 얼마후, 혜미와 나는 커피숍을 빠져나와 나란히 길을 걸었다. 나는 늘 그랬던 것 처럼, 택시 타는 곳까지 그녀를 데려다 주려는 생각이였다. 그때, 갑자기 그녀가 내게 물었다. -지금 집에 갈꺼야?- 그 말은, 더 같이 있자는 말이였다. 나는 잠시 고민이 되었다. 오늘 나름 침착하게 잘 대처를 한 것 같았는데 여기서 내가 혜미랑 시간을 더 같이 보내게 되면, 사실상 오늘은 그녀의 계획대로, 모두 이루어진게 되는 것이었다. 짧은 순간이였지만, 나는 새벽에 그녀의 전화를 받았던 날, 그 순간을 떠올렸다. 그리고 잠 못 이루던 새벽과, 나이트 클럽..은정이 생각도 했다. 잠시후, 나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혜미에게 대답했다. -나..요새 일찍 들어가봐야 해..집안 분위기가 별로야..- 내 대답을 들은 그녀의 표정이, 순간 멈칫했던 것 같다. -그래..- 나는, 그녀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순간 궁금했다. 결국, 얼마후 혜미를 택시에 태워 보내고 발길을 돌려 집으로 향했는데, 막상 생각한대로 그녀를 보냈지만, 왠지 마음이 무거웠다. 머리로는, 이제는 아무렇지 않다고 스스로 주문을 걸어도 혜미에 대한 무언가가 가슴속에 남아있는 건 나로써도 어쩔수 없는 노릇이였다. ***** 며칠 후였다. 나는 집에서 빈둥거리다가, 무심코 부모님이 나누는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당신..돈 갚는거 걱정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봐요..20년을 버텼는데..안 그래요?- 잘은 모르겠지만, 엄마가 아버지에게 뭐라 하시는 것 같았다. 한참 좋을때 두분이 모아 두셨던 돈은, 이미 전부다 소진을 하신 모양인지, 아버지께서 회사 일로 돈을 빌리 신것 같다. 하긴, 지난 1년 사이 회사의 매출은 절반 이하로 줄었는데 여전히 회사를 유지하고 이끌고 가다보니 운영 자금 조달이 쉽지 않으셨던 것 같다. 아버지도, 겉으론 강한척 해도, 저렇게 한번씩 엄마에게 속 얘기를, 꺼내놓긴 하시는 모양이었다. 가끔은 그도, 힘든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포기하고 싶을때가 있으셨던 것 같다. 그날 저녁, 아버지가 잠시 담배를 태우로 나가시는 것 같았다. 나는 재빨리 며칠전에 선물 받은 박스를 들고서 그를 따라 나갔다. 나는, 담배에 막 불을 붙일려고 하는 그에게 다가가 살며시 박스를 건냈다. -그게 뭔데?- -이거 지갑인데..아버지 쓰시라구요..- -지갑? 나줄려고 네가 산거야?- 그의 물음에, 순간적으로 나는 거짓말이 나왔다. -뭐..그렇죠..좋은거니깐 쓰세요..- 그는, 혹시나 내가 어디서 받았다고 하면 필요 없으니 나보고 쓰라고 하실것 같았다. 잠시후, 그는 내가 건낸 지갑을 펴보이기도 하고, 이리저리 앞뒤로 만져보았다. -그래..고맙다..잘쓸께..- -네..- 나는 고맙다고 말을 하는 그의 얼굴에서, 순간 낯설지 않은 표정을 보았다. 내가 아주 어릴때, 그에게 카네이션을 달아드릴때면 그는 방금 지었던 표정과 비슷한 표정을 그때도 지었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무뚝뚝하셔서 굳이 많은 말씀을 하지 않으셔도, 나는 그가 지금 어떤 마음 상태인지 충분히 느낄수 있을 것 같았다. '힘내세요' 나는, 그 말이 하고 싶었지만, 그냥 계속 모르는척 하는게 낳을것 같아서 하지 않았다. 아니, 할수가 없었던 것 같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다음에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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